죽음이란 무엇인가

서울지부

죽음이란 무엇인가

서울 6기 – 2014년 5월 오션
인문 2 & 자연과학 2 – 안혜지, 백석현, 방진영, 임종일, 오지윤, 조정한, 민승현

  1. 이전 글 제목
  • pdf down
  • font-size / line-height up
  • font-size / line-height down
  • default
[동영상] 죽음에 관하여

죽음, 인간이라면 누구나 겪어보지 못한 채 안고 살아가야 하는 일평생의 과제. 죽음과 인간은 뗄 수 없는 불가분의 관계이다. 그렇기 때문에 늙지 않는 방법에 대한 연구도 많고, 죽음을 바라보는 시각도 다양하다. 과연 죽음이란 무엇일까라는 단순한 호기심에서 시작해 최근 대두되는 ‘죽음학(學)’에 착안하여 ‘죽음이란 무엇인가’에 대해서 조사해보게 되었다.

죽음을 크게 인문학적 관점과 자연과학적 관점으로 나누어서 접근하였다. 먼저, 죽음을 인문학적 관점에서 바라본다면 죽음은 삶과 별개의 것이 아니다. 또한 죽음 이후의 세계(사후세계)는 존재하며 그것이 새로운 삶의 시작이 될 수도 있고, 천국과 같은 영원히 죽지 않는 곳일 수도 있다고 바라본다. 반면, 자연과학적 관점에서 죽음은 세포의 죽음 전면적인 호흡활동의 중지 그 이상 그 이하도 아니다. 세포의 생성부터 노화의 과정이 죽음에 이르는 과정을 통해서 죽음을 정의하기도 하고, 뇌와 연관 지어 죽음을 정의하기도 한다. 이처럼 다양한 죽음의 정의를 통해서 죽음을 바라보는 다양한 관점을 제시하는 리포트다.

죽음을 바라보는 다양한 관점

죽음에 대한 정의는 셀 수 없이 많다. 죽음에 대한 정의를 나눠보면 크게 자연과학적 관점과 철학적 관점, 종교학적 관점으로 나눌 수 있다. 자연과학적 관점은 죽음을 단순히 눈에 보이는 현상으로 정의한다. 그 중에서도 생물학에서 정의하는 죽음은 혈액순환의 전면적인 정지, 호흡, 맥박과 같은 동물적인 생존기능의 정지로 의사(醫師)에 의하여 정의되는 생존의 종식을 의미한다. 또 다른 심폐기능설의 주장을 빗대어 보면 죽음은 심장의 박동과 호흡운동 및 인체의 각종 반사기능의 영구적인 정지를 의미한다.

반면, 철학적인 관점에서 보면 죽음은 삶과 별반 다른 것인 없는 상태이다. 삶 속에서 자고 깨는 것과 다를 것이 없다는 정의이다. 이것은 죽음 이후 다시 깨어지는 세계와도 밀접한 연관을 맺고 있다. 바로 사후세계이다. 보통 종교학적 관점에서 죽음을 정의할 때 많이 등장하는 단어이다. 사후세계에 대한 존재 여부를 규명하기 위해서는 인간을 영혼과 신체의 합일체로 바라본다는 시각에서 출발하여야 한다. 인간이 영혼과 신체로 이루어져있다고 한다면 이 두 요소가 분리될 때를 죽음이라고 정의내릴 수 있어진다.

죽음이란 무엇인가

죽음의 인문학적 관점 – ‘죽음과 잠’의 관계를 통해서 바라본 죽음

죽음은 깊은 잠에 잠들어 있는 상태라고 할 수 있다. 존윌리엄 워터 하우스의 <잠과 그의 형제 죽음>이라는 그림을 보면 죽음의 신 타나토스와 잠의 신 힙노스가 나란히 자고 있는 모습을 통해서 죽음과 수면을 하나라고 보는 관점을 알 수 있다. 몽테뉴 수상록에도 잠은 작은 죽음이고, 죽음은 큰 잠이라고 표현했고, 어둠의 신 닉스도 잠과 죽음의 근원이 같다고 보았던 것처럼 죽음과 잠을 밀접하다고 보는 관념은 오래 전 부터 계속되어왔다. 죽음을 철학적인 관점으로 바라보았을 때, 잠과 죽음의 차이점은 없다. 잠이 잠깐의 휴식인 것처럼 죽음도 마찬가지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대부분의 사람들은 죽음을 소멸로 인식하고 두려워하는데, 그것은 인간이 만들어낸 ‘상상’속에 갇혀서 죽음을 바라보기 때문이다. 우리가 매일 밤 자는 상태도 ‘죽은 상태’로 인식한다면 죽음은 두려운 것이 아니라 긴 수면 상태에 들어가는 것이라고 생각할 수 있다. 우리의 인생을 하루 24시간과 같다고 생각해보면, 생명이 탄생하는 것은 아침에 잠에서 깨는 것과 같고 인간이 죽는 것은 밤에 잠을 자는 상태와 같다.

그렇다면 죽음 이후의 세계는 어떻게 정의 내려야 할까. 인간은 잠을 자면서 꿈을 꾼다. 그 꿈속에서 희로애락을 경험하는데 이것을 죽음 이후의 사후세계로 생각해 볼 수 있다. 사후 세계를 어떤 관점으로 바라볼지에 대한 다양한 의견이 존재하지만 죽음과 잠이 밀접한 관련이 있다는 것을 미루어 보아 죽음 이후의 세계는 잠에서 깨어난 일상을 의미한다고 볼 수 있다. 따라서 죽은 이후 인간은 일상을 살아가는 것처럼 죽음이 시작점이 되어 새로운 삶을 살아가게 된다. 즉, 윤회를 의미한다.

이렇게 인간은 늘 죽음을 곁에 두고 살아가지만, 죽음을 ‘잠자는 상태’처럼 익숙하고 편안한 것으로 인식한다면 우리가 살아가면서 ‘죽음’에 대해 가지는 막연한 불안함과 두려움은 덜 수 있다. “죽음은 인간의 자유가 가진 마지막 무기” 라고 주장한 몽테뉴의 사상을 살펴보자. 그는 친구 라 보에시의 죽음으로 독서와 집필을 시작하게 되면서 몽테뉴가 가장 관심을 가졌던 죽음이라는 주제. 그는 죽음을 생각하는 것으로 생의 자유를 지향하는 스토아주의적 논조를 보이지만, 동시에 쾌락주의적 경향도 볼 수 있으며, 그것들은 작품을 일관하는 온당한 회의주의 정신에 의해 누그러져 있다. 몽테뉴는 불의의 사고로 인해 가사상태에 빠졌던 경험이 죽음을 순순히 받아들이도록 도와주었던 것을 묘사하면서 어떤 문제에 대해 미리부터 생각하는 것은 오히려 문제를 확대할 수 있다고 말한다. 또 고통에 대해 지나치게 금욕주의적으로 맞서는 것이 절제나 지혜와 양립할 수 없다고 이야기한다.

죽음의 인문학적 관점 – 종교학적으로 바라본 죽음

종교학적으로 죽음을 바라보기 위해서는 크게 세 가지로 나누어서 살펴 볼 수 있다. 첫째, 종교의 유무와 죽음 수용. 둘째, 불교 여부와 죽음 수용. 셋째, 개신교 여부와 죽음 수용이다.

먼저 종교 유무 집단 내에서 죽음을 수용하는 정도는 무교 응답자들이 38.8%, 종교인이 32.1%로 나타난다. 그 중에서도 여자가 죽음에 대해 더 수용적인 것으로 드러났다. 그리고 가장 상반되는 불교와 개신교 신자들의 죽음 수용도를 비교해 보았을 때, 상대적으로 개신교 신자들의 죽음 수용도가 높았으며, 불교 신자들은 죽음 수용도가 낮았다. 그러나, 두 집단 모두 나이가 듦에 따라 죽음 수용도가 높아지는 양상을 보였다.

개신교에서는 죽음 이후 사후세계는 천국과 지옥으로 양분된다고 본다. 그들은 윤회 없이 이 세상에서 예수그리스도의 존재를 믿고 하나님을 믿는다면 천국으로 갈 것이고 그렇지 않으면 지옥으로 갈 것이라고 사후 세계를 정리한다. 반면, 불교는 우리의 죽음은 또 다른 시작이며 사후세계에서의 삶이 다시 현세계로 이어져 환생한다고 생각한다. 이처럼 죽음을 바라보는 두 종교의 관점이 다양하기 때문에 종교학적으로 죽음을 바라보았을 때 죽음이 무엇이다라고 한가지로 정의 내리기 어렵다.

그러나 이 결과를 종합하여 보면 종교가 있는 사람은 없는 사람은 죽음에 대해 전반적으로 더욱 수용적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많은 사람들이 현대 한국의 종교가 상업화, 세속화되었다고 비판하지만, 종교의 고유 기능 중의 하나인 죽음에 대한 공포 감소는 어느 정도 작동하고 있다고 할 수 있다. 또한 죽음 수용을 성별로 보면 종교적 여성이 종교적 남성보다 죽음을 더욱 수용하는 경향이 뚜렷함을 알 수 있다.

죽음의 자연과학적 관점 – 생물학적으로 바라본 죽음

죽음이란 생명활동이 정지되어 다시 원상태로 돌아오지 않는 생물의 상태로서 생(生)의 종말을 말한다. 고등동물에 한정하면 그 개체를 구성하는 전 조직 기능의 정지라고 말할 수 있는데, 생명의 종말은 심장고동과 호흡운동의 정지로 나타난다. 일반적으로 자연선택은 개체 수준에서 작용한다. 어째서 내 죽음이 내게 이득인지 쉽게 가늠하기 어렵다. 그러나 죽음이 우연과는 거리가 멀다는 것도 명백한 사실이다. 그러면 진화론적 입장에서는 개체의 이득을 위해 생명 자체가 시작되고 그 직후부터 죽음이 진화된 것도 분명한 사실이다. 하지만, 인간과 같은 복잡한 유기체가 죽는 이유를 설명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우리는 왜 ‘늙어서’ 죽는가라는 의문은 더욱 복잡한 문제이다. 이에 대해 특별한 이유에 덧붙여 보다 일반적인 이유가 몇 가지 제안되었는데, 예를 들면 노쇠는 개체의 생애 동안에 일어나는 복제 과정의 유해한 잘못과 다른 유전자의 손상이 축적된 것이라는 이론이 있다. 죽음에 대한 전통적인 학설로는 “늙은 개체는 그 종의 나머지 개체에 대한 이타적 행위로서 죽는다. 왜냐하면 번식할 수 없을 정도로 너무 늙어서 공연히 세계를 혼란에 빠뜨리기 때문이다”라는 것이 있다. 다만, 이 설은 증명하려고 하는 것, 즉 개체가 너무 늙어서 번식할 수 없음을 처음부터 가정하고 논의하는 하나의 순환 논법으로서, 단순한 그룹 선택 내지는 종 선택과 같은 종류의 설명과 다를 바가 없다.

반면, 영국의 동물학자이며 면역학자였던 피터 메더워 (Peter Brian Medawar, 1915~1987)가 제창한 이론은 유전자 선택에 의한 진화 사상의 좋은 예이다. 메더워는 전통적인 학설을 따르지 않았다. 그의 의견을 요약하면, 성공한 유전자가 가지는 또 하나의 일반적인 특성은 자기 생존 기계의 죽음을 적어도 생식 활동 뒤로 미루는 경향이 있다는 사실이다. 젊어서 죽지 않은 자가 조상이 된다는 것이다. 그는 자신을 지니고 있는 개체를 죽게 하는 유전자를 ‘치사 유전자’로 칭하며, 선택은 다른 치사 유전자의 작용을 늦춰 주는 효과를 가진 유전자에게 유리하게 작용하고, 좋은 유전자의 효과를 빠르게 하는 효과를 유전자에게도 유리하게 작용한다는 것이다. 이에 의하면, 진화의 많은 부분은 유전자 활동이 시작되는 시기에 유전적으로 제어된 변화로 이루어졌는지도 모른다.

흥미로운 것은, 죽음과 관련된 진화론적 설명들이, 자연과학적이기보다는 사회과학의 실증적 연구 방법에 가깝게 제시된다는 점이다. 가설을 실험을 통해 증명하는 자연과학의 연구 방법에 의해, 유전 및 노화 등에 관련된 수많은 실험이 설계되고 수행되지만, 죽음과 관련된 상당수의 진화론적 설명들은 아직 실험에 의해 증명되지 못하고 잠정적 결론 수준에 머무르고 있다. 인간의 생식 주기는 너무 길어 연구하기 어렵고, 생명체의 노화 메커니즘이 너무 복잡하여 아직 다 밝혀지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과연 이러한 자연과학적 연구 방법 즉 실험을 통해 죽음을 설명할 수 있을지는 여전히 의문이 남는다.

자연선택 [ natural selection, 自然選擇 ]

동종의 생물 개체 사이에 일어나는 생존경쟁에서 환경에 적응한 것이 생존하여 자손을 남기게 되는 일로, 생물은 다산하며 또 개체마다 변이성을 가지는 데 기인한다. C.다윈이 품종개량에서 행해지는 인위선발로부터 유추하여 생물진화의 주된 요인으로 제창하였으며, 오늘날에도 진화요인론(進化要因論)과 관계가 깊은 집단유전학의 주요 개념이 되어 있다.

open

참고자료

  1. 샘 파르니아, 조쉬 영. 죽음을 다시 쓴다. 페퍼민트.
  2. 시니, 혀노. 죽음에 관하여. 네이버 웹툰.
  3. 닉 레인(2011). 생명의 도약. 글항아리.
  4. 리처드 도킨스(1993). 이기적 유전자. 을유사.
  5. 네이버 지식백과 / 두산백과사전
  6. 한국인의 죽음수용과 종교/이기홍

댓글 남기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