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라지는 인문학, 그리고 진정한 대학이란 무엇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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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지부

사라지는 인문학,
그리고 진정한 대학이란 무엇인가

부산 4기 – 2016년 1월 오션
인문: 혁오 – 김두용, 김보람, 한정훈, 임소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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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즈음 ‘인문학의 위기’라는 화두는 비단 대학에서뿐만 아니라 언론과 문단에서도 의견이 분분한 주제다. 현재 정통 인문학 강좌는 이제 마지막 보루라 할 대학에서조차 고사 직전에 처해 있고 학생들은 인문학 전공을 기피하는 실정이다. 더욱이 여러 대학의 철학과 폐지 논란은 인문학계에 위기감을 한층 고조시켰다.

또한 최근 철학과와 윤리교육과를 통폐합한 동아대 및 부산 지역 대학의 전공 선택 현황을 보면 취업이 유망한 인기 학과에만 학생들이 대거 몰리고 기타 인문학과에는 전공 지망이 소수에 불과한 실정이다.

이렇듯 인문학 위기가 표면상 드러났음을 알 수 있다. 이 시점에서 오늘날 한국 인문학이 당면한 위기상황을 해결하고 인문학 고유의 사회적 역할을 제대로 수행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현재 인문학 위기를 발생시킨 여건들을 고찰, 그에 따른 정책적 해결방안을 모색하는 것이 시급하다.

인문학의 위기

경원대가 2003년에 철학과를 없애는 등 최근 3년간 철학과 12개가 폐과됐고 독문과와 불문과도 각각 4곳이 문을 닫았다. 경북대는 5월경 독문과와 불문과를 사범대에 통합하려다 교수들의 반발로 계획을 일단 접었다.

90년 전통의 대구가톨릭대는 인문대 철학과를 비롯해 외국어대 불어불문학과 독어독문학과 이탈리아어과 등 문과 분야 주요 학과에 대해 내년부터 학생 모집을 중단하기로 했다. 이에 따라 현재 1학년이 졸업하는 4년 뒤에 이들 학과는 폐과된다. 1982년 개설된 철학과의 경우 모집정원을 50명에서 40명으로 줄였지만 입학생은 갈수록 줄어 현재는 10여 명에 불과하다.

취업이 어려운 인문계열 및 야간학과의 통폐합 과정에서 실직을 우려한 교수들의 반발도 있었으나 고용 안정을 약속하고 협조를 유도했다. 이 대학은 과거 시간강사가 담당하던 상당수 강의를 정규 교수에게 맡기면서 시간강사가 일자리를 잃었다.

배재대 학생들이 학과 통폐합에 반대하는 시위를 진행 중이다. 최근에는 정부의 프라임 사업 등 취업경쟁력이 떨어진다고 판단되는 학과의 통폐합이 진행되고 있다.
(이미지 출처: http://goo.gl/HpszYB)

인문학의 위기는 전국적이지만 위기의 정도는 지역에 따라 다르다. 서울 소재 대학들이 이제 인문학의 위기를 체감하고 아우성을 치기 시작했다면 지방대는 이미 무너지는 수준이라고 볼 수 있다. 이대로라면 지방대의 현주소는 서울 소재 대학의 가까운 미래를 보여 주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동아대는 올해 초 철학과 생명, 그리고 의료 윤리까지 한꺼번에 가르치는 ‘철학생명의료윤리학과’를 신설했다. 학교 측의 말에 따르면 의학적 지식과 더불어 생명윤리 탐구라는 명목의 철학적 지식까지 가르친다는 것이다. 기존에 있던 철학과는 이처럼 정체성이 모호해졌다.

현대 사회처럼 눈 깜빡할 사이에 많은 것이 바뀌는 시대에서 강조되는 것은 기술을 비롯한 실용적인 것이다. 내가 잠깐 한 눈 파는 동안에 경쟁자들은 업무를 계속해서 하고 있다는 생각에 실생활에, 작업에 필요한 기술 등을 제외하고는 비생산적이라고 여겨지는 인문학에는 어떤 신경도 쓰고 있지 않는다. 사회만이 아니라 대학에서도 마찬가지이다.

많은 사람들은 인문학의 위기가 외적 환경의 변화에 능동적으로 대처하지 못한데 있다고 생각한다. 인문학은 자본주의의 세계화, 정보화로 대변되는 문화변동, 지식기반사회의 도래에 따른 인문 지식환경의 변화에 적절하게 대응하지 못하였을 뿐만 아니라 신자유주의, 정보사회 및 국제경쟁체제에서 강조되고 있는 효율성, 시장성, 실용성, 사용가치성, 전문성 등에 부합하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다.

인문학을 시대착오적 혹은 시대에 뒤떨어지게 만듦으로써 학문세계의 주변부로 내몰고 있는 가장 커다란 외적 원인은 자본주의의 세계화에서 기인하는 신자유주의적 경쟁체제이다.

인문학의 위기는 인문학의 경제적 가치가 적기 때문에 발생한 것처럼 보인다. 어떤 사람들은 “인문학이 밥 먹여주느냐?”고 말함으로써 인문학 전공자의 저조한 취업률을 꼬집고, 또 어떤 사람들은 인문학에 대한 사회적 수요가 급격히 줄어들었기 때문에 인문학이 위기에 처했다면 이 위기의 극복 역시 시장질서에 맡겨야 된다고 주장한다.

인문학의 존재 의의 및 대학의 진정한 의미

이렇게 쓸모없는 애물단지 취급을 받고 있는 인문학, 이 인문학이 왜 필요할까.

인문 정신은 인간의 진정한 가치와 삶의 의미를 따진다. 인문학은 세상을 살아가는 데 반드시 필요한 윤리와 도덕의 기준을 제시해 주고 있다. 이러한 인문학이 빈사상태에 빠지고 인문 정신의 중요성이 망각된다면 그 결과는 불을 보듯 뻔하다. 눈앞의 이윤만을 추구하는 행동이 인문적 가치에 앞서게 된다면, 사회적 갈등과 충돌의 해소는 요원한 일이 되고 만다. 과학자에게 건강한 인문정신이 결여된다면, 과학이 인류의 행복에 기여하기보다는 인간과 자연을 황폐화하는 도구로 전락되고 만다. 그러므로 인문학은 우리의 구체적 삶을 질적으로 향상시키기 위해서 절실히 필요하다.

마이크로소프트사의 창업자로 세계적 갑부인 빌 게이츠는 어찌 보면 인문학과는 전혀 관련이 없어 보인다. 그러나 그는 “인문학이 없었더라면 나도 없고 컴퓨터도 없었다” 라고 말했다. 인문학적 상상력이 모든 이에게 필수적으로 요청되고 있다는 말이다.

인문학은 학문의 세계에서 지하수의 수맥과 같다. 사람들은 지하수에서 생명에 필수적인 물을 끌어올려 마신다. 지하수가 사람의 눈에 보이지 않는다고 해서 그것의 보전과 개발을 소홀히 해서는 안 된다. 지하수가 오염되거나 고갈되어 버리면 지상의 생명체도 위협을 받고, 산업 활동마저도 마비되어 버릴 것이다. 인문학이 없이는 다른 학문도 위기를 맞게 된다.

그 뿐만이 아니다. 지금 사회는 노동자인 인간을 양성하고 원하지만, 인간은 원래 근본적으로 로봇이나 기계 같은 존재가 아니다. 기계 등에선 찾아볼 수 없는 여러 가지 철학이나 사상을 가지고 있고 또 쉽게 말하면 마음을 가진 존재이다. 그런 인간이 자본주의의 틀 안에서 오로지 일만을 바라보고 살다보면 지치고 뭔가 맞지 않는 옷을 입은 것처럼 어색할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인문학은 간의 삶과 현실에 대한 본질적이고 원리적인 진단과 처방을 내릴 수 있는 유일하다시피 한 것이라고 볼 수 있다.

인간이 본능에 충실한 존재라고 보더라도, 인간은 빵만으로는 살 수 없다. 인간에게는 물질적 이외에도 정신적인 것이 필요하다. 그리고 인간이 인간답게 살기 위해서 필요한 것 중에 하나도 인문학이다. 살아가는 데 필요한 윤리를 비롯해서 사람의 삶을 구성하는 데 인문학은 많은 영향을 차지하고 있다. 이런 인문학의 위기는 결코 어떤 한 학문만의 위기가 아니다. 삶을 구성하는 큰 뿌리에 위기가 닥친 것이다. 그리고 우리 삶을 비롯해서 이 사회와도 연결된 커다란 문제이다.

정부와 대학 본부 주도 하에 이루어지는 인문학의 기피 현상은 ‘대학’의 변질된 의미와도 맞닿아 있다.

1980년대 이후 신자유주의 물결은 대학에도 변화와 개혁을 요구하고 있다. 더 이상 대학이 지식공동체로서 학술 연마의 장은 사라지고 있고 지식창조의 의미만이 최선이라는 고전주의 사상은 먹혀들지 않고 있다. 대학교수들도 공공성에 관심 없는 배타적 학술연구는 도외시 되고 있다. 정량화된 지표에 따라 대학의 순위가 결정되고 수치적 성과만능주의가 판을 치고 있다.

프라임 사업은 취업을 기준으로 대학의 학과를 재편하는 작업이다.
(이미지 출처: http://goo.gl/JCU1Fq)

최근 교육부는 우리나라 대학을 A~E까지 다섯 단계로 평가해 등급으로 나누어 발표하였고 나쁜 등급을 받은 대학은 정부재정 지원이나 학자금 대출도 제한하겠다고 발표했다. 전국 66개 대학이 부실판정을 받았고 충청북도 지역에서는 6개 대학이 포함됐다. 이렇게 되면 하위등급을 받은 대학들은 신입생모집에서부터 난관에 부딪치고 결국 학생 등록금으로 움직이는 대학들이 도태될 수 있다는 분석이다.

많은 사람들이 알고 있는 것처럼, 대학은 취업을 위한 장소가 아니며 인맥을 쌓는 곳도, 사회 속 위험에 대비하기 위한 보험도 아니다. 현재 한국 사회 속 대학의 의미는 크게 변질 되어 있다. 아직까지도 기성세대뿐만 아니라 이제 막 자라나는 청소년들까지 대학의 의미를 잘못 이해하고 있다.

영국 캠브리지 대학은 대학의 사명을 “최고 수준의 교육(education)과 학습(learning) 연구(research)를 추구하며 사회봉사를 통해 인류에 기여 한다”며 학생들에게 최고의 교육을 베풀고 학문적 활동을 수행하는 것이라고 본다. 대학은 지식수호자이며 창조자 역할을 하고 있고 오늘날 시대변화에 사명의 본질이 새롭게 요구받고 있다. 전통적 사명을 수행하고 변화하는 현재와 미래에 적합한 창조적 인재를 배출하는 것은 대학의 책무인 것이다.

맺음말

예일대학교 (이미지 출처: http://goo.gl/Cw6IU1)

그렇지만 이런 인문 경시 풍조는 한국에만 국한된 것이 아니다. 최근의 미국, 일본을 비롯해 소위 선진국이라는 대열에 있는 대학들을 봐도 인문 관련과의 대학 진학률이 현저하게 낮아지는 것을 확인 할 수 있다. 인문학과의 지원 예산보다 이공계열 학과의 지원예산이 도드라지게 차이가 난다. 물론 이공계열에 지원을 많이 한다. 그럼에도 인문학을 살리려고 개인적, 구조적 노력을 필사적으로 하고 있다.우리나라에도 더 나은 대학과 사회문화를 만들기 위해 노력하고 있는 사람들이 많다. 하지만 이들의 노력에 비해 달라진 것은 많이 없다. 국가의 지원이라던가 개인들의 노력이라던가.

사회가 요구하는 인재상을 국가가 적극적으로 만들겠다는 것은 물론 좋은 취지이다. 하지만 필수적으로 해야 할 인문교육을 간과하면서까지 무리하게 밀어붙이는 것은 다시한번 생각해보아야 할 문제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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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자료

  1. “인문학은 ‘소용없는’ 학문인가?” 조은정 기자, 성대 신문 (2002년 03월 05일)
  2. “풍향계—무너지는 지방 대학” 김택 논설위원/중원대 교수, 동양 일보 (2015년 10월 01일)
  3. “대학은 담론 공동체, 물음과 논의 없인 학문도 없어” 이광주 인제대 명예 교수, 한국 대학 신문(2015년 4월 26일)
  4. “‘키메라’ 학과가 태어났다” 안희석 시민 기자 동아대 유전공학과 4학년, 부산 일보(2015년 8월 28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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